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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 창업의 현실

어쩌다 사장 (1) - 알바 메뚜기

 

 

3월에 입사한 주부직원님께서 사정이 있어 그만 둔다고 하신다.

아...다시 앞이 깜깜해졌다. 지난 3개월, 덕분에 숨 쉴 수 있었는데 말이다.

넋을 놓고 있을 수 없다.

 

 

당장 알바몬에 구인공고를 올렸다.

띠링, 지원자가 있다는 알림이 왔다.

너무 어린이다. 설거지도 안 해 봤을 것 같다. 패스.

띠링, 다시 알림이다.

대학원을 졸업하신 50대 주부님이신데 본인 사업장에 나가지 않는 날 일하고 싶다고 하신다.

심지어 음식점 경력이 없으신 신입이셨다.

어머니, 저도 50대라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기에 기회를 드리고 싶지만

저부터 살아야 해서 죄송합니다. 땡, 탈락.

띠링, 이번에는 기대를 가지고 열어본다.

오, 28세다. 심지어 요식업 경력 7년.

그녀닷! 당장 면접을 요청한다.

금요일2시, 면접이 가능 하다고 바로 답장이 온다.

 

금요일 그녀를 만났다. 큰 키에 늘씬한 외모, 단정한 옷차림에 마음속으로 일단 합격!

A브랜드 주방에서 무려5년의 경력이 있어 주방일은 껌이라는 그녀

심지어 샐러드를 몹시 좋아해서 매장 내 메뉴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얘기에 뛸듯이 기뻐했다

역시, 우리집과 인연이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찐합격! 을 외쳤지만

마음속으로만 외치고

최종 결졍을 해서 주말 안에 연락을 한다고 하고 면접을 마쳤다.

당장 나오세요 하지 않고 사장의 품위를 지킨 나, 칭찬해. 하하

 

대망의 월요일 그녀가 출근을 했다.

10분 먼저 출근하는 모습에 역시, 달라. 달라. 뿌듯해하며 계약서 먼저 작성을 했다.

앞치마와 모자를 건네 착용하게 하고 출근하면 무엇 부터 해야 하는 지 A 부터 Z까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담당은 그릴 파트. 고기를 굽고 썰고 버섯을 볶고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등 주방의 전반적인 일들.

큰 브랜드 주방에서 5년 일한 경력이 있어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런데 설거지 하는 폼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주방 5년이면 설거지쯤이야 눈 감고도 할텐데 그릇 잡는 폼도 어설프고 업소용 식세기 사용이 서툴다.

닭다리를 그릴에 구워내서 도마에 놓고 썰게 하는데

이 언니, 고기 썰어 본 것 맞나?

처음 일하는 업장이라 낯설어 그런거겠지?

 

그런데 이것 해 주세요. 저것 해 주세요. 하기 전에는 내 뒤를 졸졸 쫒아 다니기만 했다.

알아서 척척척 할 것을 기대 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심지어 알려준 것도 다시 알려주어야 했다.

큰 브랜드 주방 5년 경력이면 일반적인 업무는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할 것이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가게만의 메뉴 조리법이야 아무리 매뉴얼이 있어도 처음이라 배워야 한다고 쳐도

손님 오가고 다른 사람이 조리하고 바삐 왔다 갔다 하는 분위기에

나온 그릇 빨리 빨리 치워주고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 하고 하는 모습을 기대 했는데

기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첫날이니까 그런거겠지. 알려주고 배우면 능력을 발휘하겠지.

그녀가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문자를 보내왔다.

사장님! 일 너무 재미있어요. 잘하고 싶어요! 빨리 배워서 저도 주5일 근무하고 싶어요!

역시 오늘은 첫날이라 낯설어서 그랬구나.

잘 가르쳐줘야겠다.

 

다음날 그녀가 출근했다. 어제 너무 재미있었고

맛있는 샐러드를 먹어서 행복했다며 앞치마를 입는다.

발랄한 그녀다.

이것 저것 재료 준비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일을 시작했는데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더지가 나오면 이렇게 저렇게 준비 해서 음식이 나가면 된다고 했는데

오더지가 나와도 뽑지 않고 서 있고 알려줘야만 움직인다.

갸우뚱. 시간이 지나면 잘 할 수 있겠지?

바쁘게 점심 시간을 보내고 그녀는 퇴근을 했다.

캐톡. 그녀에게 장문의 메세지가 왔다.

저 사장님..다름이 아니구요.

제가 예전에 일했던 브랜드에서 관리자로 일했었는데

다른 지점 오픈하는 곳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정직원 자리라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어떻게 뽑은 직원인데 이틀 일하고 그만 두어야 한다고?

초단시간 근로자일세.

이틀 만에 그만 두어야 한다는 소식에 충격이었지만

정직원으로 취직을 했다는데 붙잡을 수 없어

세상 쿨한 사장인척 메세지를 보냈다.

어머나! A님 너무너무너무 잘 되었어요. 축하해요!

아쉽지만 A님에게 잘 된 일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고 그쪽도 당장 출근 하는 일정은 아닐 것 같고

저도 바로 구인을 해야 하니 다음 주 월화 라도 출근 할 수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네, 사장님 매니저님께 확인 해 보겠습니다.

사장님, 계약서 쓰면서 확인 해 봤는데 근무일이 당장 이번 주 토요일부터

토일월화수 근무조로 일하게 되었어요.

저도 일하고 싶었는데 너무 죄송합니다.

당장 사람을 뽑기는 어려워서 한숨이 나왔지만

일단 취업은 잘 된 일이니 물개 박수를 보내며 그녀와 안녕을 고했다.

그동안 이렇게 이틀 일하고 그만 둔 적은 없었던 지라

급여 계산을 어떻게 해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틀이니까 다음 주에 정산 해 줘야겠다고 결정하고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시급 떼 먹는 악덕 사장은 되기 싫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구인은 하지 못했고 추가 인원 없이 근무 하던 직원과 둘이

주방을 날라다니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바쁜 점심 시간을 보내고 마감조와 바톤터치를 하고 퇴근 하는 길에 메세지가 왔다.

그녀다.

교통비가 나가는 날이라 오늘이나 내일 급여를 보내달라고 한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장사3년차인데 그만두고 먼저 돈을 보내달라는 경우는 처음이다.

그제서야 면접일 부터 그만 둔다고 얘기하던 모든 순간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던 순간부터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우리 가게에서 오래 일 할 계획은 없었고

갈 곳을 준비 하고 있었으나 시일이 남아 놀기는 뭐하고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심산이었을 것 같다는 의심

정직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도 뭔가 석연치 않기는 했으나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거지, 사실을 따지면 무엇하리오 싶어서

물개박수를 쳐주며 떠나보냈는데 역시나였다.

 

먼저 시급을 보내달라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어도

나는 알아서 먼저 급여를 보냈을 것인데

돈이 얼마나 급하면 10만원이 안되는 돈을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을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말이 돈 달라는 말 아니던가?

속았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약이 올라서 최대한 끌다가 늦게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속을 끓이느니 내 손해지 싶어서

바로 계산을 해서 송금 해 주고 말았다.

내속을 아는 지 모르는지 바로 도착한 감사합니다! 라는 그녀의 문자.

세상에나, 이런 친구도 있구나.

사람 보는 눈 +1 점 추가.

앞으로는 근로계약서 쓸 때 하루를 일하고 그만 두더라도

급여 지급은 매장의 정해진 급여일이 지급됩니다. 라고

명시를 해야겠다.

시간이 지날 수록 장사를 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명심 해야 하는 일들 목록에 추가 할 일이 하나 또 늘고

내 얼굴에 주름도 늘고 흰머리도 는다.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네.

장사 라는 일은 참 버라이어티 한 것을 오늘도 역시나 체감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은 무사평안 하기를 바라며.